article in 'thought' : 13

  1. 왜 열심히 사느냐.. (2) 2010/09/28
  2. 관점 2010/08/21
  3. 엄마의 교훈, quality (2) 2010/07/27
  4. 상대적 크기 (4) 2008/10/13
  5. '생각'과 '고민' 2008/09/22
  6. 틀을 벗어나고자 하는 (-)의 전자 (2) 2008/07/29
  7. brief moment in life 2008/07/24
  8. 감정적대화방지를 위한 "객관적대화법필터링장치" (10) 2008/07/14
  9. 의미 (3) 2008/07/01
  10. space model (8) 2008/06/25

왜 열심히 사느냐..

from thought 2010/09/28 00:21
몇년전인가..
(내눈에 모든것을 다 가진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무심코 지나가는 말로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사냐'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그냥 대충대충 살지..

으음. 글쎄. 뭐...
'무엇'이나 '어떻게' 때문에 고민한적은 많지만
솔직히 '왜'는 생각해본적이 없어서
당시에는 엄청 충격을 받았다.

정말 바득바득사는 나에게
'넌 도대체 합당한 이유도 없이 그리 바득거리고 사는게냐?'라고
꾸짖는것 같아서,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기억이 지워지지 않는다.

지난 몇달, 정말 미친사람처럼 열심히 살았다.
시기적으로 회사에 일도 많이 들어왔고
머리속이 너무 복잡해서 일부러 몸을 바쁘게 만들기도 했고
와중에 놓치고 싶지 않은 몇가지 일들도 있었고..

근데 이건 다 그냥 핑계인거 같다.
그냥 나는 남아도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어서
팔자가 그렇게 못나게 생겨서 이러고 사는거 같다.

어렸을 때는 해야 할일도, 나가서 노는것도 모두 다 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힘이 부쳐서 점점 나가노는 횟수가 줄어든다.
집에서 혼자서 그냥 투닥투닥거리면서 만들고 일하고
일하고 만들고 일하고 만들다.. 또 뭐 할거 없나 찾고 또 일하고 만들고..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고, 단한번도 그 당위성에 의문을 가져본적은 없는것 같다.

내게 '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난 이렇게 바쁘게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이 편하다.
이렇게 살다보면, 언젠가 내 뒷모습을 돌아보며
'아- 이것을 찾기 위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구나'..라며
그 '왜'를 찾는 날이 오지 않을까?

(작은 생각)
나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에.. 난 아직 더 열심히 살아도 된다!
솔직히 난 최근 매우 많이 게을러졌기 때문에.. 난 아직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2010/09/28 00:21 2010/09/28 00:21

관점

from thought 2010/08/21 02:08
내가 바람피면 로멘스
남이 바람피면 불륜

운전하다 내가 잘못하면 남들이 참을성이 없는거고
운전하다 남이 잘못하면 난폭운전자

내가 운전할 땐 자전거타는 애들이 미친놈
내가 자전거탈 땐 운전하는 놈들이 미친놈



기준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관점은 주관적일 수 있다.
2010/08/21 02:08 2010/08/21 02:08

엄마의 교훈, quality

from thought 2010/07/27 15:13
엄마는 늘 요리를 할때 '귀찮더라도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요리가 훨씬 맛있다'고 말했다. 그 때는 하나하나 잣 꼭지를 따내고, 절구에 녹두를 찧고, 양의 까만 융털을 손으로 일일이 벗겨내고, 생선의 가시 하나하나를 뽑아내고, 얇게 포를 뜬 소고기를 망치로 일일이 두드리는.. 엄마가 오히려 미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요즘 기계가 얼마나 좋은데.. 믹서로 빠바박- 돌리면 되지, 그냥 고기집에서 손질해오면 되지, 왜 저리 굳이 고생을 사서하나.. 싶었다.

나이가 지나면서, "왜" 엄마가 그 귀찮은 밑손질을 일일이 해왔는지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잣꼭지에서 나오는 쓴맛이 얼마나 잣죽을 망칠 수 있는지, 감자의 수분을 제대로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감자칩이 얼마나 맛없을 수 있는지, 고기를 제대로 두드려주지 않으면 얼마나 질겨질 수 있는지.. 경험을 통해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분명히 귀찮지만, 내가 조금만 더 신경을 쓰면 요리가 훨-씬 맛있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고 신비롭다.

누군가는 이를 사랑이라는 조미료라고 부르기도 하더라. 내 가족이 먹을꺼니까 더 정성을 쏟고, 더 마음을 쓰니 그것보다 나은 조미료가 뭐가 있을까. 참 좋은 말이다.

이 명쾌한 원리가 내가 하는 일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오늘 문득 깨달았다. 귀찮더라도, 줄 한번 더 맞춰주고, 주석 하나 더 달아주고, 베리에이션 하나 더 만들어서 비교해보는, 이런 나의 노력과 정성은 분명히 내 디자인을 훨씬 더 맛있게 만들어 줄 수 있다. 귀찮다고 생각해서 가장 쉬운길만 골라다녔던 내 자신이 너무나 창피하다. 한번만 더 생각하고 한번만 더 마우스를 움직이면 훨씬 더 맛있는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데, 왜 나는 그 원리를 몰랐던 걸까.

결국, 그래 이것은 quality다. 이 나의 정성과 노력은 quality를 높이는 일이었던 것이다. 분명히 그 quality를 높이는 일은 실로 귀찮은 일이다. 꼭 할 필요는 없지만, 하면 꼭 티가 나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니, 귀찮더라도 조금만 더 신경을 쓰자, 조금만 더 시간을 쏟자, 조금만 더 만지고 주물러보자.

엄마의 교훈, quality
2010/07/27 15:13 2010/07/27 15:13

상대적 크기

from thought 2008/10/13 13:41
손톱끝이 살짝 뜯긴것이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할정도로 괴롭힐때가 있다.
입안의 혓바늘이 하루종일 너무 괴로워 밥도못먹고 머리까지 아플때가 있다.
발바닥에 난 작은 물집같은게 하루종일 날 미치도록 신경쓰이게 할때가 있다.
밤에 잠들기전, 침대에 누워 들리는 시계바늘의 똑딱소리때문에 잠을 못이루게 할때가 있다.
작은 컴퓨터의 윙윙거림이 잠을 못자게 만들때가 있다.

남들에게는 '에게- 뭐 그런거 가지고'로 들리는 것들이 나에게만 크게 보일때가 있다.
문제는 다른이들의 상대적인 크기를 잘 이해하지 못할때에 생긴다.
'넌 왜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넌 왜그렇게 확대해석을 해' 따위의 핀잔은
감정의 상대적 크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흔히하는 실수다.

상대적인 크기라는 것은 참 어려운것 같다. 흠흠
(이 메모는 나중에 좀 더 다듬어져야하겠다)
2008/10/13 13:41 2008/10/13 13:41

'생각'과 '고민'

from thought 2008/09/22 13:49
'넌 머리속 안터지니? 왜 그렇게 많이 생각하고 살아?'

난- 정말 이해가 안간다,
이게 내가 정말 '불필요한' 생각들을 많이하는건지..
아니면 모두들 세상살기가 너무 바쁘고 빨라서, 내가하는 이런 생각들이 남들에게 '불필요'하게 느껴지는지...

최근 꽤 많이 들은 이야기중 하나는 '너 왜그렇게 생각이 많니' 라는 핀잔.
몇달전 머리속이 고민으로 가득차있었을때 이런 핀잔을 받았다면 그러려니 받아드리겠다. 당시에 나는 '사춘기'라는 되먹지도 않은 변명을 해대면서 고민을 하는 상황을 정당화 시켜보려 노력도 해보았더랬다. 하지만 최근에는 솔직히 그닥 고민도 안하고 마음이 호수의 수면처럼 잔잔잔하다. 지금은 그닥 고민도 많지않고 내 생각에는 난 그냥 아주 적당하고 건전한 양의 생각만 하는것 같은데, 왜 자꾸 사람들이 내게 '불필요하게 많은 생각을 하고사는 심각하고 피곤한 사람'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빨간딱지를 붙이려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은.. '생각'과 '고민'의 다른점을 이야기하고
나의 '많은 생각'들을 정당화 시켜주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언젠기 은규와 했던 재미있는 대화를 다시한번 언급해야하겠다. 
우리는 언젠가 '고민'과 '생각'사이의 종이 한끝 차이에 대해 매끈하게 정리를 내려보았다.
생각에 빠지는건 나쁘지 않다, 생각이 없는것보다는 이로우니까. 하지만 그 생각이 자꾸 머리속에 attached되어 그 이슈에대해 계속 생각을 하다보면, 점차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고 비이성적으로 상황을 왜곡하고, 결국 이런 반복적 과정을 통해 생각의 stage에서 고민의 stage로 넘어간다. 보통 고민으로 넘어가면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별것도 아닌 일에 크게 동요하고 우려하는 현상이다. 미래의 있을법한 가능성에 대해서 과장되게 해석하고, 혹시 이러면 어쩌지 이래야하나 저래야하나 우왕자왕 갈피를 잡지못한다. 혼자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고 허우적대다가 봐야할 현실을 똑바로 보지못하고, 결국 상황을 외면 또는 왜곡하게 된다. 아아- 이건 안좋다!

생각이 많은 만큼, 우리는 가끔씩 의도하지 않게 고민을 하기도 한다. 가능하면 현재 일어나는 일에 충실하고, 아직 있지도 않은일에는 '가능성'만 인정할뿐 앞서서 상상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날 보면 자신도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대로 이상한 상상을 하면서 이러나지도 않을 일들에 대해 앞서서 고민하고 우려하게 된다.

굳이 예를 한번 들어보자면... 30살을 전후로 하는 여성들에게 있어서 '결혼'이라는 컨셉트에 대한 생각이다.
'결혼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것까지는 건전했다. 하지만 많은 social pressure와 주변의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듣고 또 들으면서 우리는 결혼에 대한 '생각'에서 결혼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간다. 괜히 처음보는 사람에게 얼토당치도 않게 자신이 상상해왔던 '결혼 잣대'를 갖다 대질 않나, 상대방의 작은 친절함이나 관심의 표현에 '저사람이랑 결혼해야하나' 삼일밤낮을 고민하지않나.. 노노노- 이건 좋지않다.

쉽지는 않다. 생각과 고민의 차이.
다시생각해보면 고민도 어딘가에는 필요할텐데.. 고민을 하는게 무조건 나쁜건 아니니까..
언젠가 여유있을때 고민이 왜,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필요한지 좀 더 생각해봐야하겠다.

여하튼- 이것이 오늘의 생각; 생각과 고민의 차이!
2008/09/22 13:49 2008/09/22 13:49
틀-

그게 그런거 같다. 점점 간단해지기가 힘들다, 점점 투명해지기가 힘들다.
나라는 인간은 어릴적부터 1+1=2라는 거대한 공식을 진리로 믿고 살면서,
모든 인생만사에 꽤 간단명료하며 이해가능한 공식이 있을것이라 가정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흠흠.. 예상치못한 상황에 맞닫트렸을때는 (즉 나의 공식 리스트에 없는 상황 앞에서는)
언제나 스스로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 나의 공식리스트에 추가하곤 했다.
이런이런 factors가 있으니까 이런이런 equation을 통해 음음 결국 answer는 이거겠군..
이라고 혼자 매우 고민하고 매우 생각해서 '빤짝거리는 새로운' 공식을 만든다, 그리고 혼자 열라 뿌듯해한다.
이 공식들은 다양한 조합과 합성을 통해..
나는 나스스로에게 '이렇게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몇가지 삶의 틀을 제시해왔다.

여러가지 틀이 있다.
내가 만들어내는 나만의 삶의 방식의 틀 (즉 위의 공식들),
사회에서 내게 요구하는 '착해보이는' 엄친딸 틀,  
지금 현재 엮여있는 나에게 돈을 주는 고용주와 나와의 관계의 틀,
존재하는 주변인들, 또는 그들과의 대화에 의해 만들어진
소위 '좋아보이는' 또는 '추구하고자하는' wanna-be 틀
등등등.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정말로 이 틀이 정말 싫었다.
내가 만들어놓고 내가 그 틀어 갇혀 사는 모습이, 그렇게 흘러가는 내 삶이 참 싫었다.
솔직히 기억도 안난다, 왜 내가 이 틀을 벗어나려고 노력했었는지.
갑갑했고, 유약해보였다.
내가 어떤것에 유착되어서 누군가의 제시에 의해 사는것 같아서,
의존적이며 색깔없어보이는 내가 싫었던듯도 싶다.
망상같이 나를 사로잡는 틀들을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또한 아주, 아주아주 가끔씩은 이 틀을 벗어났다고 착각하기도 했었다.
 
...
이틀전 후배가 했던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언니는 그 틀중에서 가장 중심점에 서서 이제껏 걸어왔던 사람이자나'

아- 흙! 흙흙흙!!!
인정. (아 속상하지만)인정..
1인칭이 아닌 3인칭관점으로보면 나는 틀중의 틀에 사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남보다 빨리졸업하고, 대학도 나쁘지 않은학교, 4년졸업했고, 졸업하자마자 대기업 다니다, 조금방황 (이정도는 애교)
그리고 미국으로 유학와서, 졸업하자마자 여기서 직장잡고 내가 꿈꾸던 도시에서 살고, 좋은사람들도 항상 주변에 많고..
음음. 겨우 내나이 28살. 나쁘지 않아!!!!
아니아니, 나쁘지 않은정도가 아니라 이정도면 감사하게 땡큐지.

가끔씩 그런 상상도 해본다; 만약 내가 이 틀중에 틀속에서 살면서 너무 만족스럽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용히 취미활동하면서, 운동열심히 하면서, 밥 맛난거 먹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에서 내가 만족할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
솔직히 여기를 벗어나서 뭐를 하고싶은지 뭐가 되고싶은지도 모른다.
이 맘보가 뭐가 뒤틀려서 왜 여기를 벗어나고싶어서 이리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것인지...
어차피 벗어나지도 못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면서 이런다.
도대체가 모르겠다, 진짜로 사춘기인가보다. 허허허  

내가 틀에서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나는 틀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아 방금생각난 메타포, 이거 너무너무너무 좋아!

(-)의 전자가 (+)의 원자핵 주변을 돌고 있었다.
이런 지겨운 원자라는 틀따위 싫어!!! 반항을 하면서 뱅뱅뱅 돌다가
어느순간 힘을 내서 에너지 레벨 상승! '뽕-' 하고 튀어나온다.
아주... 아주아주 잠시의 자유의 시간. 붕붕붕 허공을 떠돌며 그 높고 강한 에너지를 가진 전자는 행복했다, 아주 잠시.
그리고 순식간에 불쌍한 (-)의 전자는 자유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결국, 다른 (+)의 원자핵에 '슈루-룩' 하고 끌려가 붙어버린다.  
그것도 미친듯이 안정적인 뱅뱅뱅 쳇바퀴 인생.
(-)의 전자는 원하지 않았다, 이런 안정적인 상황.
(-)의 전자는 뭔가 이 원자라는 틀을 벗어나고자 그리 노력했었다.  
하지만 어떠한 거대한 자연의 섭리가 그 전자를 항상 안정된 틀속에 구속하려 든다.

난 아무래도 그 전자를 닮은것 같아.
아니, 세상의 모든 human being에게 이 (-)의 전자라는 습성이 남아있을지도.
(이런이런.. 주제가 '자연은 위대하다'로 흐르는건 안대지!)

나는 틀을 벗어나려고 수도없이 노력했지만, 이 trap을 벗어나 보려고 정말 미친듯이 노력했지만
결국 갖은 노력을 다해 틀밖으로 점프한곳은 자유로운 세상이 아니라, 또다른 더 크고 넒은 틀.
이런 제길. 도대체 뭐때문에 이 틀을 벗어나려고 노력을 한거야. 바보같이

솔직히 회사의 일은 정말 재미있다, 삶도 요즘은 점점 재미있어진다.
하지만, 왠지 이 틀을 벗어나면 뭔가 또 다른 즐거움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서
이 틀을 벗어날 기회를 기다린다. 그리고 아주 잠시의 그 방황의 스릴을 상상하면서 짜릿함을 느낀다. 호호
2008/07/29 17:05 2008/07/29 17:05

brief moment in life

from thought 2008/07/24 22:57
사용자 삽입 이미지


"How much, I wondered, did that moment -- just 1/250th of a second when three lives intersected on a river bank in Iraq -- contribute to the burdens he'd brought home with him? If I'd never taken his picture, would he have ended up as he did? Would he still have been a casualty of war?"


(In March 2003, photographer Warren Zinn took this photo of Army medic Joseph Dwyer with wounded 4-year-old Iraqi Ali Sattar. This American hero, Dwyer struggled with PTSD and died June 28 of substance abuse. )

see the original

two thoughts about a brief moment in life

1|
sometimes it amazes me to think that most of unforgettable experiences are memorized a shot of picture capturing a brief moment. One shot of visual image is remaining in our mind as a representative of whole story, and whenever we set our mind back to the experience, the captured moment will burst upon us. As time goes by, we will get forgotten the rest of story except for some visual images. otherwise, the whole story will be implied into the connotative visual image as well.

2|
sometimes it amazes me to realize that most of significant changes in our life are caused from a brief moment. someone called this moment 'AHA moment' and when it comes to the consciousness and awareness of one's everyday life, frequency varies. One day in my life, after passing this brief moment, i can see and think and feel and sense something more or something differently. It can bring me back personal growth, happiness, frustration, awareness, or even wise.
2008/07/24 22:57 2008/07/24 22:57
한동안 '소통'이라는 문제를 두고 말도 안대는 잡스러운 상념에 빠져있었다. 아마, 나의 상황이 잘 되지도 않는 '영어'로 이들과 소통을 해야한다는 무모한 도전으로 가득차있었기에 이 문제가 더욱 더 크게 와닫았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아'라고 말했는데 이게 저 아이한테 '아'로 들릴지 '어'로 들릴지, 과연 내가 '아'로 제대로 의미를 전달은 한건지.. 항상 고민하고 머리속에서는 슈퍼컴퓨터급 계산기가 숑숑 맨날돌아간다.

그러는 동안 한가지 확실하게 배운것은, 내가 입밖으로 꺼낸 말들이 내가 원하는대로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슬픈 사실이었다. 그것은 언어를 뛰어넘어 같은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사이에도 항상 존재한다. 이렇게 본래의 의도가 다른의미로 바뀌어 남들에게 전해지는 과정에서 점점 내가 느껴야하는 좌절감은 커져만 갔다. 그러면서 가능하면 내가 뱉어내는 말의 의도를 조금이라도 더 객관적으로 전달하고자하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함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객관적 대화법 필터링 장치'를 만들었다. 여러가지의 필터 레이어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 예를 들면, 모든 상황을 factor중심으로 이야기하고 거기에 내 감정이 꼭 더해져야한다면 가능한 큰 감정의 줄기를 중심으로 작은 감정들은 가지치기를 한다. 내 감정은 적어도 한두번 곱씹어서 내 머리속에서 '확실하다'라는 느낌이 드는 certified emotions이어야하고, 작은 감정들은 다시한번 생각해보고 필요없으면 과감하게 버린다.

이는 내 성격에서 나오는 극적/감정적 대화법의 폐해를 줄이고자하는 일종의 장치이다. 나라는 사람이 곧잘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혼잣말같은 쓸데없는 대화를 생각없이 내뱉거나, 또는 미친듯이 감정적이 되어서 두서없는 말들을 막 꺼내놓구서는 혼자서 자책과 민망의 바다를 허우적거리곤 하기에, 이 "객관적대화법 필터링장치"가 부디 나의 이런 습관적인 잘못된 대화법을 바로잡고, 무엇보다 내 말과 생각이 내가 의도한바와 다르게 전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해주리라 믿는다.

문제는 내가 기계가 아니기에 또한 이 장치를 쓰고자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었던지, 여하튼 나의 모든생각이 모든상황에서 알맞은 절차에 의해 객관성을 띄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진즉에 알고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나의 인간적인 모습이 참 좋다. 내가 기계적이지 않아서 가끔씩 안심이 된다. 물론 내가 그 필터링장치를 완벽하게 마스터해서 내가 뱉어내는 말들이 전해지는 이에게 더 간결하고 분명하며 군더더기없이 이해하기 쉽게 잘 전달될수 있다면 그것만큼 더 좋은게 어디 있으랴만은, 모든건 역시 '자연스러운게' 좋은거라고 억지스러운 내 모습은 기계처럼 보일까무섭다. 언젠가는 나도 이 장치를 내 몸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날이 오겠지.. 혼자 읊조려보며.

*
내 입에서 나오는 '말'에 책임을 져야하겠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말을 그냥 뱉어놓고 뒤돌아 보지않지만, 그 말은 남의 귀에 들어가 가끔씩은 상처도 되고 가시도 되고 약도 되고 따뜻함도 된다. 혼자서 무인도에 떨어지지않는이상 이 사회에서 뒤엉켜 살아야하는 social creature로서 우리는 뱉어내는말에 책임을 동반해야한다고 가끔씩 생각해본다. 길가에 쓰레기를 버리는게 이 사회에서 나쁜짓으로 규정되어있지만 사람들은 그래도 버린다. 생각없이 뱉어낸 말들을 감정적 쓰레기에 비유한다면 그건 좀 심한 비약일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우리주변엔 정말 쓰레기 같은 말들도 참 많기는 많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정말 재미있고 따땃한 대화에 심하게 갈증을 느낀다. 30분이라도 달달한 꿀같은 대화를 하고나면 일주일의 피로가 다 풀리는것 같아서 너무 좋은거.

**
말에 무게가 실리는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다. 가끔씩 그런 사람이 있다, 그사람이 무슨말을 하면 괜시리 귀가 열리고 귀에 쏙쏙 박혀서 마음속에 참 와닫고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남들에게 influential해지고 싶다는게 아니라, 나의 말이 남들에게 약이되었으면 하는 뜻으로 받아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저 '객관적대화법필터링장치'를 완벽마스터하면 분명 나의 말에 무게가 자연스럽게 생기겠지만.. 아- 아직은 갈길이 멀다. 우선 하나씩하나씩! 마스터를 위해서는 몇십년이 걸릴수도 있으니 조급해하지말고 천천히.

아- 또 이상한 헛소리가 되어버렸다 쿠하하핫 (민망..)
2008/07/14 00:06 2008/07/14 00:06

의미

from thought 2008/07/01 15:08
며칠전, 그런생각이 들었다,
점점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것은 이런 느낌이다'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나에게서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절대적'이 아닌 '주관적'이라는 걸 인지하면서부터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의미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절대적인 객관이라고 생각하는 현대사회의 the most fundamental standard, 0과 1도
결국에는 인간이 만들어낸 'provisional and compulsive' standard가 아니었던가.

푸르른 하늘위에 뜬 따뜻한 햇살을 우리는 '따뜻하고 온화하다'라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하지만, 아주 먼 옛날 윈시부족들에게 해라는 자연물을 숭배하는 애니미즘이 없었다면,
또는 그 해라는 자연을 저주하는 애니미즘이 있었다는 가정을 해본다면,
지금의 우리는 밝은 날 공원에 나와 햇살을 쬐는 행위를 기분좋게 느끼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햇살을 쬐는 행위가 매우 저주스럽고 음침한 행위로 인식되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치 밤에 공동묘지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

결국, 우리가 아는 의미는 과거의 관습과 인간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같은 것인데
(아 점점 이거 matrix가 되어가는건가 흠흠)
우리는 어떤 '형상',physical feature/object/situation에 '허상', virtual image을 입혀서
그것이 '진실된 의미',real meaning이라고 믿게 만드는일을 계속한다.

예를들면 아는 분이 차사고로 돌아가셨다.
기계적인 상황이라면 '사람- 아는이- 차- 사고- 죽음'이라는 factor-centural situation으로 종료가 될수 있지만,
우리는 이 기계적인 상황에 virtual image를 입힌다. 설명을 해보면..
'아는사람(+imagine some experiences with the guy. add sympathy)
- 차(+convenient but dangerous)
- 사고(+painful and horrible)
- 죽음(+empty and sad)

이런식으로 기계적인 상황에 곁가지로 image들을 삽입함으로서 '그의 죽음이 얼마나 슬프고 비참한 일인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즉,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김춘수아저씨께서 쓰셨던 이 시에는 이 허상과 실체와 의미가 어찌 연결되는지 알려주시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크허!!!!
그냥 physical feature였던 '그'라는 물체가 있다.
그것은 그냥 길가에 있는 보도블럭이나 내 책상에서 굴러다니는 병뚜껑과 그리 다를것 없는 object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그에게 '이름'이라는 가상의 이미지를 부여했고, '그'가 '이름'을 가지므로서 나에게 의미있는 존재,
즉 '꽃'이 되는것이다. 객관적인 물체가 의미로 승격되는 상황인 것이다.

내겐 너무 소중하고 대단한 편지가 남에게는 쓰레기통에 버리는 종이쪽지에 불과하지 않을수도 있고
나에게는 너무너무 싫은 그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정인이 될수도 있다.
의미는 내가 만드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만 의미있는 것이다.

다른이들의 의미가 나와 다르다하여 defensive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긴, 이게 모든이에게 적용된다면 세상에 정치가 왜 필요하고, 전쟁이 왜 일어나겠어.
모두 서로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의미를 만들어내며 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이 세상의 모든 충돌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있을것이다.
(갑자기 hitchhiker's guide to the galexy에 나오는 deep thought가 가지고 있던 그 총이 그립다! )

이세상에 '무조건적인 절대적 의미'는 없을지도모른다 (아- 과학은 제외)

flexible way of thinking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나무처럼 살아야겠다.
2008/07/01 15:08 2008/07/01 15:08

space model

from thought 2008/06/25 09:40
최근에 우연히 알게된 한 분에게서 흘러넘치는 여유를 보면서 나는 물었다,
'참 여유있다는 말씀 많이 들으시지요?'
그분이 잠시 갸우뚱 고개를 저으시더니 웃으며 이리 말씀하셨다.
'글쎄.. 여유라,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는데 나는 별로 그리 여유로운 사람은 아니네요.'
그리고 시작된 여유에 대한 짧은수다.  

여유는 마음의 공간이다.
자칫 여유있는 사람들이 '생각없음' 또는 '무념무상'으로 취급되곤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닐까 싶다.

여유, 'space'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metaphor가 필요하다. 첫째로 모든 사람은 자신이 감당할수 있는 'capacity'를 가지고 있다. 보통 그릇, 용량이라는 의미로 많이 이해하곤 하는 이 capacity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input을 머리와 마음에 담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아, 머리와 마음에서 따옴표 한번더; 여기서 capacity는 지적capacity와 감성적capacity를 모두 포괄한다는거.

둘째로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사람은 일상을 살면서 끊임없는 'input'을 받고산다. 여기서 input resource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각종 매체와 미디어에서 흘러나오는 둥둥 떠다니는 정보, 주변인으로부터 받아드리는 수동적인 정보, 본인의 관찰과 습득에 의한 자발적인 정보 등등등. 특히나 최근처럼 정보가 홍수처럼 넘처흘러나는 이 때에는 우리 주변의 input resource들이 자칫 개인을 overwhelming하기도 하는 듯하다.

이 space, capacity와 input라는 세가지 factors를 가지고 생각해볼때, 가지고있는 그릇, capacity보다 넘치는 외적자극및입력,input을 받을땐 여유,space를 가지기가 쉽지 않다. 이 세가지 factors를 가지고 몇가지 여유모델 space model을 만들어보자 (이제 심심하니까 별걸다한다;;)..

1) capacity가 상대적으로 커서 비슷한 input을 받아도 relatively bigger space를 유지할수 있는 사람
: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릇'이 크다라는 게 이런부류가 아닐까.

2) 상대적으로 input이 적어서 비슷한 capacity를 가지고 있어도 space를 유지할수 있는 사람
: 예를 들자면 속세와 차단되어 사는 아티스트

3) input를 별 생각없이 쉽게 버려서 (마치 쓰레기통을 비우듯이) space를 유지하는 사람
: 남들이 뭐라뭐라 떠들어도 절대로 own my way 뚝심있는 자

4) my favorite! input을 빠르게 정리해서 필요한것만 잘 받아들여서 organized space를 가진 사람이 있겠다.
: 필요없다 생각하면 바로 안테나 끄고 그때그때 관심분야에만 집중하는 사람들

아- 난 또 왜 이런잡생각들을 하면서 엄청 진지해지고있는것인지.. pathetic.
무엇을 하든, 쫒기듯이 그렇게 달리듯이 그렇게 맨날 급하고 모자라보이는 내 모습.
한때는 이렇게 뭘하든 열심히 다그치면 몰아대는 내가 참 좋았는데, 그런 성향때문에 마음속의 여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타고난 내 자신을 이리보니 그릇이 큰것 같아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들은말들을 맘속에 꼭꼭 쥐고사는 스타일이라 잘 흘리지도 못하겠고.. 어찌하면 나도 여유라는 것을 다시 찾을수 있을까 고민하다, 4)번 모델을 발견했다.

왜... 일년에 한번 입을까말까하는 옷들이 옷장에 넘처나지만 이녀석들을 내 손으로 버리는건 너무 어렵다. 내 마음속의 여유도 이런게 아닐까 싶다. 절대로 맘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input들이 내 작은 capacity를 차지하고 앉아서 쉽게 나가려하지를 않는다. 내 손으로  그 생각과 말과 추억과 기억과 정보와 감정을 없애는건 참 어려운 일인것 같다. 뭐 끈덕지게 맘에 남는 녀석들이야 어찌할수 없다쳐도, 대략적인 validating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과연 이 많은 상념들이 내 비좁은 맘속에 굳이 담아둘 필요가 있는지는 생각해봐야겠다. 그리고 마음속의 여유를 좀 찾아야겠다.

얏호!
2008/06/25 09:40 2008/06/25 09:40